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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어차피 내일도 힘들거니까.

by []).push 2020. 11. 7.

괜찮아 어차피 내일도 힘들 거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성실과 근면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었다.

초, 중, 고 12년을 개근했으며 대학도 개근상이 있었다면 당연히 받았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이 참 성실하고 야무지게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최고의 미덕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살았다.

아버지는 "자다가도 돈 생기는 일이라면 벌떡 일어날 놈"이라고 했을 정도로 뭐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렇다고 가정형편이 어려웠느냐? 그건 아니었다.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었으며 학교 다니는 데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다면 장남으로써 책임감? 글쎄 장남이라는 무게감을 크게 느끼며 산 것 같진 않다.

 

그냥 사람은 당연히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일찍 철이 들었다고 할 수도 없는데 어디서부터 그런 생각이 왔는지 모르겠지만

내 삶의 모토는 "닥치고 열심히"였다.

그냥 사람이라면 당연히 열심히 착실하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새벽 일찍 일어나지 못하거나, 밤늦게까지 일하기 힘들어한다거나,

주말에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일을 할 기세였다. 그래서인지 남들이 쉬는 날에도 나는 홀로 일하는 날이 많았다.

 

 

 

요즘은 요리가 문화의 한 장르를 구축할 정도로 대세이지만 당시에는 요리가 아무런 인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식품을 전공했다. 시간이 지나 요리가 대세인 시절이 올 것을 예상했냐고?

천만의 말씀, 내가 대학 가던 시절은 소위 눈치작전이라는 것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눈치작전은 형광등 한 번 갈아본 적 없는 사람을 전기과에,

책 한 권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을 당당히 문예창작학과에 합격시켜 주었다.

 

졸업 무렵 오뚝이 식품과 칠성사이다 두 군대 면접을 봤는데 당당히 떨어지고 이름 없는 중소기업에 면접을 봤는데

특이하게도 그곳에서는 합격시켜줄 테니 제발 와 달라는 식이었다.

대기업, 중소기업을 따질 처지는 아니었지만

전쟁이 나도 모를 정도로 심심산골에 자리 잡은 회사라 그 역시 포기해버렸다. 

이렇게 변변한 직장 하나 없이 대학을 졸업했다.

 

백수의 날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노는 날은 거의 없었다. 인테리어 디자인 학원을 다니면서 커피숍이나 호프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섬유를 제조하는 방적공장에도 다녔다.

또 족발가게를 운영하시는 부모님을 도와 주말이면 부동산중개업소나 여관, 모텔 등에 판촉물을 돌리며 영업을 했다.

야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야구장 앞에서 족발을 팔았고 일손이 모자라면 야간에 배달도 다녔다.

 

그렇게 학원을 수료하고 인테리어 회사에 취업을 했다.

사회에 나와 처음으로 명함을 만들었는데 직함이 실장으로 되어있었다.

TV 드라마에서 보듯 흰 와이셔츠 팔을 걷어붙이고 스탠드 불빛 아래서 늦은 시간까지 설계도면을 그리는

실장님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은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회사 1톤 트럭을 몰고 다니며 자재도 실어 나르고 현장에서 목수들의 잔심부름과 각종 장비들을 관리했다.

그 외 목공소나 건축자재상을 돌아다니며 잡무가 많았다. 또 새롭게 계약된 현장이 있으면 실측을 하고

도면을 그렸다. 말 그대로 멀티플레이어였다.

 

그때도 어김없이 성실하고 일 잘한다는 소릴 들었다.

그게 최고의 미덕인 줄 알았다. 더 열심히 노력했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그리고 주말에도 일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무언 지모를 자괴감이 쌓여갔다.

이유를 모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다. "왜?"라는 질문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열심히 쌓아가는데 돌아보면 비어있었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냥 가열하게 달리기만 했다.

그 무렵 회사를 그만두었다.

 

사장은 여러 차례 회유를 했지만 내 마음이 돌아서지 않자 월급을 정산하면서 일정 금액을 빼고 주었다.

시간 외 수당이나 보너스 한번 받아 본 적 없었는데....!! 살면서 만난 최악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내가 나간 후 여러 사람이 다녀갔지만 채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계속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은근히 통쾌했다.

그래서인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내게도 몇 차례 연락이 왔다. 20대 초반의 일이었다.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를 몸소 체험했던 시기였다.

 

 

그동안은 나무에 불과했는데 한걸음 물러나 보니 웅장한 숲과 흐르는 강물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사람이 착실하고 일을 야무지게 한다."는 소리가 관점에 따라 마냥 미덕이 아니란 걸 알았다.

성실과 근면은 개인의 만족도뿐 아니라 회사의 가장 안정적인 노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다 비판능력이나 문제의식 없이 착하기까지 하면 적당한 달란트를 던져주며 가성비 좋은 노동력으로

만들어가기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성실함과 야무진 업무능력"이라는 포장이었다.

청춘의 끄트머리에서 사회를 배웠다.

 

많은 시간이 흘러 한 번쯤 인생을 돌아볼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열심 모드로 살아가고 있다.

도대체 언제 즈음에나 인생에서 "노력"이나 "열심" 같은 단어를 빼고 살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린 날에도 박탈감보다는 당당함에 고개를 들고 싶다.

언젠가 인생을 돌아봤을 때 "열심히 살았어" 보다는 "정말 신나게 놀았어"라는 대답을 남기고 싶다.

하지만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므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삶은 여행이 아니다. SNS에 포장된 이쁜 여행 사진 뒤에 숨겨진 이면을 보아야 한다.

책임감이 발목을 잡고, 살아가는 것보단 살아낸다라는 표현이 맞을지 몰라도

가끔은 나의 힘듦을 들어내 놓고 위로를 구해야 한다. 늘 강한 사람일 수는 없다.

힘들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 괜찮아 정말 괜찮아 어차피 내일도 힘들 거니까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원래 세상이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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